2025. 3. 9. 23:37 세계사속으로2
10.한반도 최초인류의 이동
광고
광고
반응형
●한반도 최초인류의 이동

현대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13만년 경에서 11만년 경에 아프리카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고 일부는 북쪽으로 일부는 동쪽으로 움직였다.동쪽으로 이동한 그들은 낮은 해수면 덕에 아시아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순다랜드(현 인도차이나반도)에 6만년 경에서 4만 5000년 경에 도착했다.그리고 순다랜드 북부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 중 일부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시베리아.중국 북부.만주 등에 정착했다. 이들 중 만주의 수렵채집인 일부가 3만년 경에서 2만 5000년 경에 한(韓)반도에 들어왔다. 초기 한(韓)반도 정착민들을 움직인 것은 차가워진 기후였다. 2만 9000년 경부터 지구의 기후는 점차 한랭해졌고 2만 4000년 경에서 1만 9000년 경 사이에 추위는 절정에 달했다.북중국의 수렵채집인은 이 시기 따뜻한 해안을 찾아 대거 남쪽으로 이동했고 일부가 연해주와 한반도로 들어와 구석기 문화를 구성하고 훗날 한(韓)민족의 바탕이 된 것이다.이들은 한반도(韓半島)와 그 북쪽에 연한 만주(滿洲) 일부에 살고 있는 종족으로 공통된 한국어를 사용하며 공동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민족으로서 황색인종(黃色人種)에 속하며 우랄-알타이어족인 원시 퉁구스의 한 갈래로 고대 중국에서는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일족이다. 한(韓)민족이 언제부터 만주와 한반도에 살았는지 그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부터 1만 년을 전후한 구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었음을 그들이 남긴 유적 ·유물에 의하여 알 수 있다. 한(韓)민족의 조상들은 일찍부터 인류의 발상지라고 일컬어지는 중앙아시아 지방으로부터 구석기시대를 전후하여 몽골과 만주지방에까지 이동해왔다고 여겨진다.남해안지방에는 해류관계로 부분적으로 남방계통의 민족이 흘러들어와 혼합되었고 황해(黃海)를 건너 한족(漢族) 계통도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중국의 "시경" 이나 "논어" 등에는 맥(貊:)이 불함산(不咸山:長白山)을 중심으로 백의 민족으로서 古朝鮮에 산다고 하였고 "사기(史記"를 비롯한 후대의 사서(史書)에는 이 종족을 예맥족이라고 하였는데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 경에 한반도 최초의 고대국가를 형성하였다.예맥족은 연구 결과 오늘의 한(韓)민족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이 밝혀졌다. 예맥족은 고대 아시아 민족인 퉁구스족에 속하며 만몽계통 또는 터키계통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에서 갈라진 일족이다. 예맥족은 곰(熊)을 신성시하여 수호신 ·조상신으로 숭배하던 토템족으로 이러한 사상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예맥족은 신석기시대의 초 ·중기부터 대륙지방에서 동쪽으로 진출하여 만주족의 조상인 숙신족(肅愼族)을 만주의 동쪽으로 몰아내면서 열하(熱河) 방면에서 한반도의 구릉지대와 헤이룽강[黑龍江] 유역을 생활무대로 하여 정착하면서 원시적인 생활을 해왔다. 원시사회의 토기를 보면 이들은 만주와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북방 아시아계통의 요소를 지닌 빗살무늬토기 계통과.화북과 만주 ·몽골계의 요소가 깃든 민무늬후육토기[無文厚肉土器] 계통과 화북계인 주도마연토기(朱塗磨硏土器) 계통의 세 갈래 길을 택하여 이주해왔다.이들은 그 뒤 만주 북쪽과 동쪽 지방에서 부여(夫餘)를 건설하고 한반도 북부에 고구려 ·옥저(沃沮) ·예(濊) 등의 고대 부족국가를 건설하였다. 이와 전후하여 한 갈래의 부족은 일찍이 남하하여 반도 남부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오랫동안 한강이남에 살면서 별로 북방의 종족들과 접촉이 없는 가운데 대소의 씨족적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마한(馬韓)·진한(辰韓) ·변한(弁韓)의 3한이 그것이었으며 이들은 총수 70여 개의 부락국가를 이루고 원시생활을 해왔다.이들은 처음부터 마한 목지국(目支國)의 진왕(辰王)을 맹주로 하여 부속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막연하나마 통일된 민족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저4세기 경 고조선과 진국(마한.변한.잔한)

이들 중에서 4세기경에는 고대 국가인 백제 ·신라가 형성되어 북쪽의 부여계통인 고구려와 남방의 3한을 중심으로 한 한민족 계통의 신라민족으로 크게 분리되었다. 어느 민족이나 처음에는 한 종족이 여러 곳에 씨족사회를 이루고 살다가 차츰 부족국가를 이루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민족의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한민족은 이와 같은 경로를 거쳐 남과 북에 부족국가를 이룬 삼국시대를 거쳐서 7세기 중기에 이르러 민족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백제만을 완전히 통합시켰을 뿐 고구려는 그 일부 즉 남포(南浦)에서 원산만(元山灣)에 이르는 경계선 이남의 영토를 정복한 데 불과하며 신라는 고구려의 남쪽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그 유민(遺民)들을 거느리게 된 데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에 통합되지 않은 고구려 민족의 대부분은 한민족과 분리된 만주족이 되었다.지구상 최초의 농경은 1만 2000년 경에서 1만년 경 사이 서남아시아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최종빙기 최성기 2만 4000년 경에서 1만 8000년 경 이후 기후가 점차 올라가는 만빙기 1만 8000년 경에서 1만 1700년 경에 해당한다.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해 인류 역사 대부분의 초기 농경지는 반건조 기후 지역에 있다. 반건조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나무보다는 한해살이풀이 자라기 좋은 초지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한반도의 농경 역사는기원전 50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의 절정이었던 기원전 5500년 경에서 5000년 경에 한반도에서 조와 기장 농경이 시작되었고 기후가 양호했던 기원전 3500 년경에서 기원전 2800년 경에 초기 벼농경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 두 시기에는 온화한 기후 덕에 주변에 자원이 풍부해 수렵채집인의 정주가 가능했다. 한반도의 벼농경은 중국의 양쯔강 중하류 지역에서 기원전 4000년 경에서 기원전 3000년 경에 전파되었다.한반도에 전래된 벼농경은 수도작을 기반으로 하는 송국리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송국리 문화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문명으로 금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3000년 경에 나타났다.기원전 2700년 경에서 기원전 2400년 경에 이르면 충청 이남 대부분 지역의 문화가 송국리 문화로 대체되었다.그러던 송국리 문화는 기원전 2300년 경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었다. 송국리문화가 사라진 동시에 한반도의 벼농경은 크게 쇠퇴했고 일시적으로 벼농경이 물러나고 수렵채집이 강화되기도 했다.수도작을 통해 인구가 급증했다가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동아시아 전체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다.오랫동안 수수께끼였던 송국리 문화의 쇠퇴 원인을 최근의 고기후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광양 습지의 꽃가루 퇴적물 자료를 분석한 결과 2800년에서 2700년 전 한반도의 기후는 갑자기 나빠졌다.갑작스러운 단기 가뭄이 닥친 것이다. 이때 금강 유역의 송국리 문화인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으로 남하했고 일부는 바다 건너 제주도에 갔고 또 일부는 일본 규슈 일대에 도착해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 일본의 송국리 문화인들은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인구를 점차 늘려갔고 당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조몬인들을 몰아내거나 동화시켰다.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에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분리되는 시점이 대략 기원전 2800년 경으로 나왔다. 당시의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송국리 벼농경 문화인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를 일으켰다. 조몬인에서 기원한 아이누족과 류큐인을 제외한 일본인 유전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야요이인들로부터 왔으므로 일본인들에게 한반도의 농경민이 이주한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원전4세기 경 삼국시대



반응형
'세계사속으로2'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아메리카대륙 초기 문명 (0) | 2025.03.12 |
---|---|
11.한반도 최초의 고대국가 고조선 (0) | 2025.03.10 |
9.춘추전국시대와 진시황제 (0) | 2025.03.09 |
8.황하문명의 발원 (0) | 2025.03.08 |
7.카레라이스와 0의 발견 (0) | 202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