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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3.14 13.아프리카대륙의 최초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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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대륙의 최초문명   

 

 

 

 

 

 

 

 

 

 

아프리카는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태동하였다.아프리카 대륙의 선사시대는 기원전 5000년 경에서 기원전 1500년 경 사이로 이 기간 동안 아프리카인들은 다양한 문화 기술을 발전시켰다.그 중에서도 나일 강 주변에 위치한 이집트 고대 문명은 농업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피라미드를 비롯한 건축물과 고대신화 및 예술을 창출했다.이는 선사시대 아프리카 문명을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로 평가 받고 있다. 기원전 450년 이집트를 걸어서 답사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년)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일강은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서 장장 6650㎞를 굽이치며 흘러간다.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의 지중해로 흘러가는 나일강은 남부의 누비아와 북부의 이집트를 잇는 젖줄 같은 강물이다. 헤로도토스의 지적대로 나일강이 없었다면 이집트 문명은 생겨날 수 없었다.나일강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범람하여 양분이 풍부한 검은 표토(表土, topsoil)를 강둑 양쪽에 쏟아놓았다. 덕분에 강변으로는 넓게 펼쳐진 천연 농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따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다른 어떤 곳보다 더 많은 곡물을 산출할 수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옥토였다. 고운 흙이 가득히 쌓인 그 넓은 땅 위에 곡물의 씨앗을 뿌리면 수백 배 많은 곡식을 어김없이 산출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나일강둑 양변에 몰려들어 마을을 이루고서 수천 년을 풍족하게 살아갔다.국가 출현 훨씬 전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미 자생적인 향촌의 질서를 유지하고 강변의 개활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장구한 세월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고대 이집트 국가는 이미 존재하는 강변 마을들을 차례로 지방 행정단위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문제는 나일강만으로는 이집트 문명의 창조력과 고유성을 제대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융성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집트의 위대한 임금들 곧 파라오(pharaoh)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이 베푸는 자연적 혜택에 자족했다면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높은 수준의 고대 문명을 형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강을 이용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풍요와 부의 집적을 이뤄냈다. 바로 그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이집트의 절대군주 파라오의 적극적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특히 주목하는 인물들로는 이집트 제1왕조의 제1대 파라오 나르메르(Narmer) 와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이집트 제4왕조의 제1대 파라오 스네프루(Sneferu.재위 기원전 2613~2589년). 최초의 여성 군주 하트셉수트(Hatshepsut.재위.기원전 1479~1458년). 태양신 아톤의 일신교 체제를 확립한 제18왕조의 파라오 아크나톤(Akhenaten.재위 기원전 1352~1335년).이집트 신왕국 19왕조의 제3대 파라오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람세스(Ramses, 재위 기원전 1279~1213년) 등을 꼽을 수 있다.그중에서도 특히 이집트 북부 나일강 하류에서 일어나서 남부의 나일강 상류 지역을 정치적으로 통일한 나르메르의 업적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인류사 현전 최고(最古) 문서는 기원전 3200년 혹은 3150년경 최초로 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의 영웅적 위업이 기록된 나르메르 팔레트(Narmer Palette)이다.

 

 

 

 

 

 

 

 

 

 

 

 

 

 

 

 

 

서기1897년에서 서기1898년 고대 이집트 남부의 종교적 중심지 네켄(Nekhen)에서 영국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이 팔레트는 5000년간 땅속에서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실트암(siltstone)을 잘 갈아서 만든 기다란 반쪽 타원형의 팔레트로 크기는 세로 63㎝에 가로 42㎝ 정도이다. 양면에 부조된 여러 상징적인 그림문자들은 고대 이집트 최초 통일 왕조가 세워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앞면 중앙에는 긴 모자를 쓴 큰 사내가 곤봉을 잡은 오른팔을 쭉 위로 뻗고 정을 잡은 왼손은 주저앉은 사내의 머리를 잡고서 힘차게 내려쳐서 깨부수려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곤봉으로 적의 머리를 깨부수는 바로 이 이미지는 이후 3000년에 걸쳐서 고대 이집트에서 정복의 의미로 계속 사용되었다.이집트학의 대가들은 바로 이 그림 속 사내가 나르메르라고 추정한다. 그 근거는 우뚝 선 사내의 머리 위에 새겨진 직사각형 속의 상형문자이다. 궁전을 상징하는 듯한 그 직사각형 안에는 물고기와 끌이 새겨져 있는데 이집트어로 물고기는 나르(nar)이며 끌은 메르(mer)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한자(漢字)와 마찬가지로 이집트 문자 역시 뜻과 소리가 뒤섞여 사용됐다. 이 문서는 결국 나르메르의 통일 위업을 기리기 위해 국가 기관에서 제작한 일종의 기념 문서라 할 수 있다.나르메르의 통일왕조 건립은 이집트 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하게 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강력한 정치권력이 형성되기 위해선 경제적 풍요가 필수적이다. 나일강 유역에선 일찍이 풍족한 곡물이 생산됐다. 어느 사회에서나 누구든 남아도는 곡물을 집적하게 되면 대규모 인원을 상시 고용할 수 있게 된다. 일단 그 인원은 경제활동 인구에서 제외되지만 그들의 노동력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면 대규모의 토목 사업을 벌일 수도 있고 원거리 정복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력을 조직하게 되면 바로 거기서 정치권력이 생겨난다. 정치권력이 고도로 집중되면 군사적 정벌과 병합을 통한 통일제국의 건립이 가능해진다. 통일왕조의 수립은 경제력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대규모 수리 사업으로 나일강의 물줄기로 내륙까지 연결해 더 넓은 농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나일강 중류에서 기원전 1000년 경 쿠시 왕국을 건설한 누비아사람들도 이집트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쿠시왕국은 오늘날 수단에 위치한 강력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켜나가면서 아프리카 내륙의 중요한 중심지로 자리잡았다.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양식에 영향을 받았지만 독특하고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다.오늘날 메로 지역에 남아 있어 쿠시 왕국의 건축적 유산을 대표하고 있다.수도 메로는 철기 생산과 상업활동 중심지로 크게 번성하였다.뛰어난 제철 기술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전역과 교류하며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쿠시 왕국은 지중해 세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역로로 금.상아.철과 같은 귀중힌 자원을 교역하였다.한편 동부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고원에서는 기원전 1000년 경부터 셈계 민족이 에티오피아 고원의 북부에 정주지를 형성하며 악숨 제국의 기반을 마련했다. 서기1세기에 악숨 제국은 고원을 넘어 소말리아와 아라비아 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있는 왕국이 되었다.

 

 

 

 

 

 

 

 

 

 

 

 

 

 

 

 

서기 3세기에서 4세기에는 화폐를 제조하고 기독교를 수용하며 종교 문화를 꽃피웠다. 나일강 중류의 쿠시 왕국 이 쇠퇴하던 시기 악숨 제국의 영향력은 로마제국과 인도까지 닿고 있었다.10세기까지 지속되며 정치적 .경제적.종교적 중심지로의 역할을 하였다.거대한 석조 비석과 오벨리스크 등 독창적인 건축물들은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특히 오벨리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형 석조기념물 중 하나이다. 아프리카 서부에서는 가나. 말리. 송가이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이슬람과 서부 아프리카 토착 문화를 꽃피웠다. 가나 왕국은 기원전후로 이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 이룩한 문명이자 토착 종교를 지켜낸 제국으로 약 500년간 무역 활동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다가 10세기경에 쇠퇴하였다. 말리 왕국은 13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이 지역을 다시 통합하면서 도팀북투.젠네등을 중심으로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역로의 중심지로 번성하면서 당시 아프리카 대룩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로 등장했다.말리 제국의 황제 중에 만사무사는 14세기에 메카로 순례를 떠나며 길을 따라 금을 대량으로 나눠주는 행위로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겼다.15세기 이후 말리 왕국 내 작은 민족국가였다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송가이는 동쪽 나이저강 유역으로 영토를 넓히며 이슬람 문화를 확산시키고 교육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한편으로 아프리카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차드 분지에서는 카넴보르누 왕국이 7세기 이후 2천 년간 무역 활동을 하며 이슬람 왕조로서 명맥을 유지했다. 10세기 이후 나이지리아 중부와 북부 나이저강 유역에서는 하우사 왕국이 세력을 키우며 여러 왕국을 연합하기도 하였다. 북부 아프리카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유럽과 교류하면서도 아랍 문화를 발달시켰다. 모로코.알제리. 튀니지.리비아 등 북서부 지역의 국가들을 묶어 마그레브라 부르는데 이는 ‘해가 지는 지역’이란 뜻의 아랍어다. 이곳의 역사는 주로 아랍권 무슬림과 유럽권 기독교인들과 교류하며 쓰여졌다.그 중 유명한 사례가 카르타고이다.기원전 1000년 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연안에 카르타고 도시 국가를 세웠고 유럽 사회와 교류를 지속했다.카르타고는 현재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아에 위치했던 고대의 강력한 도시 국가였다.지중해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문명으로서 페니키아의 식민지로 시작되어 발전했으며 이후 독립적인 정치와 경제 체제를 구축하며 독자적인 문명으로 성장했다.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지중해의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아 나름대로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다.지중해 해상 무역을 장악하여 부유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했다.뛰어난 항해술과 선박제작기술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지중해 연안을 연결하는 교역망을 통해 국제적인 상업중심지로 자리잡았다.남부아프리카에서는 짐바브웨라는 고대 도시국가가 당시의 지역의 문명과 위엄을 갖고 독창적인 석조 건축물과 뛰어난 기술력으로 번성하였다.이 도시는 오늘날 짐바브웨 공화국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도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거대한 석벽과 탑으로 돌을 접착제 없이 쌓아 올린 정교한 건축술은 이 문명의 기술적 역량과 창의성을 입증하고 있다.특히 거대한 언덕 요새와 대규모 원형 구조물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정치와 종교.사회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했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또한 이러한 건축물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오늘날에도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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