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9. 19:14 세계사속으로1
12.고대이집트 중왕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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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이집트 중왕국 시대(BC2100-BC1680 년 경)
고대이집트 중왕국은 BC 2100 년 경에 세워져 아메네메스왕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 했다.생활의 중심지는 새로운 수도 테베로 옮아갔고 아몬(AMON)이 태양신 레와 동일시 되면서 Amon-Re 라는 새로운 신으로 등장하게 되었다.중왕국 시대의 파라오들도 신성을 주장했으나 고왕국 시대처럼 절대적 권력을 갖지는 못했다.지방의 귀족들은 자치를 누렸으며 각 주에서 거둔 세금도 파라오와 분할하는 특권을 누렸다.이 때부터 귀족들도 신의 세계 와 연관성을 내세우면서 내세에서는 오시리스와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왕과 귀족들이 대립하면서 귀족들이 왕의 고문으로 임명되는 수가 극히 소수로 줄어들었다.파라오는 귀족들 보다는 충성심을 믿을 수 있는 서기 출신의 관리들을 택했고 이들은 관료적 중간계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이 때의 귀족들은 죽어서 왕의 무덤옆에 묻히기 보다는 자신의 영지에서 파라오 못지 않게 성대한 장례식을 치루고 묻혔다.중왕국 시대의 파라오는 절대적 권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때부터는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못했다.중왕국 시대에 와서는 상업 활동이 활발하여 무역 및 교류가 중동 지방으로까지 확대되었다.페니키아 해안의 비볼로스항은 이집트 산물이 거래되는 거대한 상업 중심지였다.이집트 공예품들은 크레타섬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수출되었다.이집트는 다신교 사회였다.신들의 수는 무수히 많았다.이집트인들은 여러 신화가 모여 전체적으로 우주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물론 이집트의 가장 큰 신은 아몬 -레 였다.그는 태양신으로 창조 신 아튬의 권위를 이어받았다.아몬-레 밑에는 공기의 신 슈와 습기의 신 테프누투가 있다.이들은 모두 아튬의 자식들이다.이들이 서로 결합하여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를 낳았다.누트와 게브가 결합하여 오시리스.세트.에프티스.이시스를 낳았다.이어서 오시리스와 이시스와 결혼하고 세트는 에프티스와 결혼한다.오시리스는 호루스를 낳고 세트는 아누비스를 낳는다.이에서 이집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화 "오시리스"가 탄생한다.오시리스 신화에서 처럼 파라오는 불행하게 죽을 수도 있다.그러나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서 다시 부활하여 오시리스와 같은 저승의 왕이 되는 것이였다.이 처럼 왕은 죽은 뒤 부활하기 때문에 장례식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이 미아라로 만들어진 시체와 함께 거대한 피라미드 무덤 속에 넣어졌다.그런데 고왕국 시대에는 파라오만이 죽어서 오시리스와 결합한다고 생각되었지만 중왕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귀족들도 이러한 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신의 의지에 따라 종교적인 계율을 열심히 지키다가 일생을 마친 일반 사람들도 역시 내세에서 부활하여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예술품에는 주로 파라오와 욍비의 조각품이 있다.파라오는 영원한 신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를 표현할 때는 영원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얼굴은 옆모습 일지라도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든지 가슴은 앞모습을 표현하면서 다리와 눈은 옆모습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신비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이러한 파라오의 표정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고왕국 시대에는 파라오의 조각상에서 세속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표현되고 있지만 중왕국 시대에 와서는 고통과 근심이 가득찬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이집트에서 명상적인 문학이 등장한 것은 고왕국 말기 시대부터 였다.이 시대에는 전례없는 혼란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돠었는가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중왕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저승 세계에서 부활할 수 있는 계층이 확대됨에 따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루는 윤리적인 문학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사후의 신비적인 문학도 발전하게 되었다."사자의 서"는 대표적인 예이다.교역을 통한 이집트 중왕국의 번영은 세누세르트 3세 때 절정을 이루었으나 기원전 1800년 경 무렵에 국운이 쇠퇴하면서 고왕국 말기에 제1중간기 혼란시기에 이어 제 2 중간기 혼란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원전 1680년경에는 힉소스의 칩입을 받고 기원전 1580년 경까지 힉소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왕국 시대 제 1중간기 혼란시대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다.그 동안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은 언제나 외부의 칩입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이잡트인들에게 쓰라린 교훈을 안겨주었다.반면에 힉소스인들로부터 발전된 군사기술을 전수 받고 이때부터 바퀴가 달리고 말이끄는 전차제조법이나 제련법을 배웠다.이 때 습득했던 군사기술을 이용하여 후에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가서는 정복 사업에 까지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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