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 21:06 세계사속으로1
8.나일강의 선물 이집트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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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선물 이집트 문명
이집트 지역에 인간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약 20 만전으로 올라가지만 문명이 발생하기 시작된 시기는 기원전 3,000 년경으로 노모스라는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었는데 이집트인은 셈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햄족계통의 민족이다.이러한 도시국가들을 메비스라는 전설적인 왕이 나타나 통일 왕국을 이루었다고 한다.이집트의 지리적 조건은 메소포타미아 와는 달리 사막과 바다로 둘려싸여 외부의 칩입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따라서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도 거의 2,500 년 동안 별다른 변화없이 고유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6세기 경 후반 폐르시아왕국에 정복 될 때까지 약 2,500년 동안 고왕국.중왕국.신왕국을 거치면서 이집트 통일국가체제를 지켜왔다.이집트의 통치자는 파라오라 불리우는 전제 군주였다.그는 신의아들 또는 신의 현신으로서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다.파라오 밑에는 신관과 관료가 있어 그들의 세력도 강대하였다.주민의 대부분은 부자유 농민으로서 공납과 부역의무를 지고 있었다.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란 말이 있듯이 강 유역은 정기적으로 범람하여 땅이 기름져 농사를 짓기위해 좋은 천혜의 땅이였다.따라서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와 마찬가지로 일찌기 농경문화가 시작되었고 관개 농업이 발달하였다.나일강은 티그리스강이나 유프라테스강 보다는 훨씬 더 유용했다.비록 매년 홍수로 인해 강이 범람하여 제방위에 있던 모든 것을 진흙속에 묻어버리기는 했어도 그 범람은 정기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다.메소포타미아 초승달 지역과는 달리 규칙적으로 범람이 있었기에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집트인에게는 나일강이라는 풍요로운 삶을 신의 선물로 주어졌다.이 시대를 이집트의 고왕국시대라고 불리운다.고왕국 시대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기반을 세웠다.대표적인 것이 대규모 건축양식으로서 피라밋을 들 수 있다.최초의 피라밋들은 왕을 위한 거대한 무덤들이었다.그 규모도 놀라웠지만 당시에 초보적인 도구들만의 사용으로 만들어 졌다는 점은 무척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기제에 있던 피라밋들은 가장 큰 것이 높이가 170 미터에 달했고 소요된 돌은 6백만 톤에 달했다.각 변의 길이가 250미터에 달했는데 그 오차가 불과 20센티 미터 미만에 불과 해 당시의 기하학 및 건축 수준이 수준급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왕들은 그저 지상에서 신의 대리인에 불과했다.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왕은 이집트의 중심이었고 신과 같은 존재였다.이집트는 우주의 중심이었다.이집트인들도 모든 자연현상을 신화를 통해 설명하였다.파라오라고 불리는 왕은 태양신 레의 아들이었다.파라오는 죽으면 나일강의 신인 오시리스와 결합되어 한 몸이 된다.그리하여 저승에서 신으로 부활하여 나일강의 범람을 조절하며 그리하여 곡식은 결실을 맺게 되는것이라고 믿었다.따라서 파라오는 살아있는 신이였기에 모든 국토는 그의 재산이었다.이 처럼 왕이 신성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파라오만이 거대한 관개사업을 추진하여 나일강을 조절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따라서 이집트 고왕국시대의 왕들은 사제들 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신적인 존재로 숭배받게 되었다.피라밋 외에도 많은 건축물이 세워졌다 .부자들도 스스로 자기와 가족들의 무덤을 건설했으며 이집트인의 일상 생활을 알려주는회화물로 무덤을 예쁘 게 장식하였다.피라밋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상징은 미이라였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후에도 영혼이 살아남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미이라를 만들었다.죽은자의 내장을 제거하고 특별한 방부제를 넣어 붕대로 싸여졌다.미이라 중에는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수천년전 인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이러한 것들은 방부제 처리 기술성의 우수한 점도 있지만 건조한 사막의 기후가 부패를 막아주었던 기능도 있었다.당시의 시체와 함께 침대.주전자.보석.장난감 등과 같은 일상 생활 도구와 심지어는 식량도 함께 넣어 부장했다.당시의 고대 이집트에는 히에로글리프라는 상형문자가 사용되고 있어서 대략적인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기념비나 묘비 등의 공식적인 기록에 주로 사용되고 일상 생활에서는 상형문자를 개량한 히에라탁이라는 신성문자가 사용되었다.이 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설형 문자보다 한결 유연했다.이집트에서는 메소포타미아 와는 달리 표면의질이 종이와 거의 비슷한 파피루스라는 갈대가 풍부하여 글씨 쓰기가 훨씬 부드러웠다.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가 다 그러하듯이 고대 이집트의 중앙 집권적 권략구조도 절대 불변의 것은 아니었다.고왕국 제 6왕조 마지막 왕 페피2세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기원전 2,200년 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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