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속으로1
20.철기 세대의 헤브라이인
JH안소니至山
2025. 2. 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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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세대의 헤브라이인
▶가나안 철기 시대 (기원전 1150-587년)
후기 청동기 시대에는 고지대에 약 25개 정도의 마을이 있었지만 1차 철기 시대 말에는 300개 이상으로 증가했고 정착 인구는 20,000명에서 40,000명으로 두 배가 되었다.마을은 북쪽에 더 많고 더 컸으며 아마도 유적을 남기지 않은 목가적 유목민과 고원을 공유했을 것으로 추측돠었다.고지대 마을의 도자기는 저지대 가나안 지역의 도자기보다 훨씬 제한적이지만 유형적으로는 이전의 가나안 도자기에서 발전했다.발국조시단은 1967년까지 팔레스타인 서부 고원지대에 있는 이스라엘의 심장부가 사실상 고고학적 미지의 땅 이었다고 설명했다 . 그 이후로 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의 전통적인 영토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이러한 조사는 철기 시대 초기에 이스라엘 땅에 존재했던 블레셋과 가나안 사회와 대조되는 새로운 문화의 갑작스러운 출현을 드러냈다[.이 새로운 문화는 돼지고기가 부족하고 고도로 장식된 도자기를 사용하는 블레셋과 가나안 관습을 포기하고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은 출애굽과 그에 따른 정복 이 아니라 기존 가나안과 블레셋 문화의 변형에서 비롯되었다.모두 몇 세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빽빽한 고원 촌락의 유적 발견은 기원전 1200년경 가나안 중앙 산악 지대에서 극적인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했다. 폭력적인 침략의 흔적이나 명확하게 정의된 민족 집단의 침투조차 없었다. 대신 라이프 스타일의 혁명인 것 같았다. 남쪽 유다 산에서 북쪽 사마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인구가 희박했던 고지대에 와해되거나 와해되있던 가나안 성읍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약 250개의 산꼭대기 공동체가 생겨났다. 여기에 최초의 이스라엘인이 있었다.따라서 현대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고지에 있던 기존 백성들로부터 평화롭게 내부적으로 발생했다고 본다.
광범위한 고고학적 발굴은 초기 철기 시대 동안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을 제공했다. 고고학적 증거는 마을과 같은 사회를 나타내지만 자원이 더 제한적이고 인구가 적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인들은 주로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그 중 가장 큰 마을은 인구가 300에서 400명 정도였다.그들의 마을은 언덕 꼭대기에 지어졌다. 그들의 집은 공동 뜰 주위에 무리지어 지어졌다. 그들은 돌 기초와 때로는 나무로 만든 2층이 있는 흙벽돌로 방이 서너 개 있는 집을 지었다. 주민들은 농사와 목축업을 하며 살았다. 그들은 산비탈에 테라스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다양한 작물을 심고 과수원을 유지했다. 마을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했고 경제적 교류가 만연했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왕정이 일어나기 전에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재판관들 에 의해 인도되었다. 작은 마을은 성벽이 없었지만 그 지역의 주요 도시의 주체였을 가능성이 높다.다윗 왕은 기원전 10세기에서 9세기로 비정하는데 강한 왕권을 가졌다기 보단 유다의 소규모 부족의 족장 수준의 인물로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는 무관하다고 본다.그는 기원전 10세기에 기브온.기브아 고원을 기반으로 급작스럽게 정치 세력이 형성되고 성서의 시삭인 쇼솅크 1세에 의해 파괴된 후 작은 도시 국가들로 분열되어 회귀하였다.일반적으로 현대의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900년에 존재하고 유다 왕국은 기원전 850년에는 존재했을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 왕국은 두 왕국 중 더 번영했고 곧 지역 강국으로 발전했다. 오므리 왕조 시대 이스라엘은 사마리아 . 갈릴리.요단 계곡 상류.샤론 및 트랜스요르단의 대부분을 통제했다. 사마리아는 레반트에서 가장 큰 철기 시대 구조물 중 하나의 본거지였다.
▶헤브라이이의 종교
헤브라이인들의 전설.역사.법률.신의 계시 등을 총망라한 구약성서는 기원전 1200년 경에 시작되어 적어도 800 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그 속에는 헤브라이 종교의 성장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야훼는 이 세상의 유일산이며 헤브라이인은 야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말하고 있다.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내려졌다고 전해지는10계명 은 헤브라이 민족에 대한 야훼의 도덕적인 요구들을 구체화한 것이였다.처음에는 야훼신을 숭배하기 위한 일정한 장소는 없었으나 솔로몬왕 치하에서 왕국이 중앙집권화됨에 따라 신전이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이후 헤브라이인들이 두 왕국으로 분열된 후 북부의 이스라엘 왕국에서 왕과 백성들이 이교로 동화하자 야훼의 계명을 따르지 않을 때에 일어날 재난을 경고하며 도덕과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는 예언자들이 등장하였다.기원전 9세기 중엽 아합왕 때 엘리아는 왕후 에제벨의 이교도 신전 건축 반대애 나섰고 에레미아(기원전 626-580)는 헤브라이 민족의 죄악에 대한 야훼의 벌로 예루살렘의 붕괴를 예언하기도 했다.또한 헤브라아인들의 바빌론 유수 기간 동안에는 에제키엘 등 여러 예언자들이 나타나헤브라이인들의 신앙 생활을 지도해 나갔다.바빌론에서 풀려나 예루살램으로 귀환하자 예언자 에즈라는 모세의 5경에 기초를 둔 율법을 성문화하여 발전시켜 나갔는데 헤브라이인들은 이 율법을 후대에까지 엄격하게 지켜나가고 있다.실제로 헤브라이인의 문화 중에서 종교를 제외하면 후대에 기친 영향은 별로 없다.그러나 기독교가 서양문화의 기본적 요인으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볼때 서양문화에 관한 한 헤브라이 종교는 오리엔트 문명의 유산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평가 받을만 하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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